낡은 책장

책장은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담은 듯한 고즈넉한 존재다. 마치 오래된 나무가 그 뿌리를 깊숙이 뻗어 대지와 하나가 되듯 낡은 책장은 방 안에 서서히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. 그 사이사이에 꽂힌 책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속삭이며 오래된 향기와 함께 공간을 채운다.

 

낡은 책장에는 단순히 책만 꽂혀 있는 것이 아니다. 그곳에는 시간과 추억 그리고 잊혀진 꿈들이 숨 쉬고 있다. 각각의 책은 언젠가 누군가의 손끝을 거쳐 간 소중한 추억의 조각들이다. 먼지가 약간 쌓인 표지, 바랜 글씨, 부드럽게 닳은 모서리는 모두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.

 

책장을 바라볼 때면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.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인생의 많은 순간들이 이 책장 속에 담겨 있다. 어떤 책은 나를 웃게 하고 또 어떤 책은 나를 울게 한다. 책장 속의 이야기들은 나의 이야기와 뒤섞여 하나의 큰 서사를 이룬다.

 

낡은 책장 앞에 서면 나는 잠시 동안 세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시간 속에 잠긴다. 책장은 나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. 그저 조용히 서 있을 뿐이다.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. 그 속삭임을 들으며 나는 새로운 세계로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.